2박 3일 TRPG 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잡담:게임책]




 지옥..은 아니고 아무튼 2015년 들어서 바로 지난주까지 굉장히 하드한 업무일정을 계속하다가 마감 마감 마감 치고, 여름 휴가 겸 리프레시 휴가를 시작한 것이 바로 이번 주였습니다.

 벼르고 벼르던 휴가였던지라 아예 풀 패키지로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무리해서 일정을 채웠고, 그 시작이 바로 일-월-화 2박 3일동안 인근 펜션에서의 TRPG 캠프 계획이었네요.


 계획을 세우면서, TRPG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공간과 테이블이 존재하는 펜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뇌를 통한 성찰이 있..기는 개뿔 그냥 욱하고 돈을 많이 써서 세미나실이 있는 펜션을 빌렸습니다.
 물론 저는 부자왕이 아니기 때문에 세미나실이 있는 펜션일뿐, 세미나실도 있고 쾌적한 펜션 레벨은 아니었지만..
 (사실은 사진보고 그런 레벨 펜션인 줄 알았어요! 어쩐지 싸더라! )

 그러다보니 팀원 5명이 가기엔 너무 넓은 공간인지라(15인용(..)) 팀원들의 지인들까지 영업을 개시하여 각설 총 9인의 사무라..아니 게이머가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팀원의 지인(=TRPG초심자)을 먼저 배려하여 테이블을 짜다보니 스케쥴이 완성되었을때 저와 일부 팀원은 아예 TRPG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역시 깊은 고뇌와 좌절, 분노, 회한 속에서 하루 전날 급하게 스케쥴을 갈아 엎고 영업하고 무리해서 세션 준비를 한 결과 말그대로 밥만 먹고 잠깐 쉴 때 보드 게임(..) 조금 하는 것 외엔 모두가 오직 TRPG만 하는 미친 일정이 완성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점심을 먹고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패스파인더 테이블이 열리고, 끝나자마자 밥 먹고 카미가카리 세션과 인세인 세션이 동시에 열리고(...), 자고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이고 바로 천하요란 테이블이 열리고 옆에선 보드 게임을 하고, 끝나자마자 점심을 먹이고 다시 미궁킹덤과 네크로니카 세션이 동시에 열리고, 끝나자마자 다시 밥을 먹이고 인세인 세션이 열리고 으아아아아아

 놀라운 점은 저렇게 정규 계획 TRPG 세션이 끝났음에도 심야 피아스코 테이블이 또 열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뜨는둥 마는둥 집에 갈 준비를 하는데 펜션 다음 예약이 없으니 더 쉬다가라는 이벤트가 발생하니 보드게임을 계속하고 나서 또 피아스코 세션이 열렸다는 것 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진짜 미친 TRPG 스케쥴이었네요. 제가 중학교때 이 게임을 시작한 후로 가장 이 게임을 할 시간이 많고 재미있고 푹 빠져있을때에도 기껏해야 일주일에 3번 하는 것 정도가 커리어하이(?)였는데..


 아무튼 굉장히 만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무리해서 세션 준비를 하고, 스케쥴을 우겨넣고 인원을 조정하지 않았다면 말그대로 펜션 제공 및 차 셔틀(..)만 하고 왔을텐데 그 무리함이 매우 좋은 결과로 귀결되어 좋았네요.

 결론적으로 저 개인은 1. 인세인의 공식 시날 '리빙 데드'를 플레이,  2. 인세인의 자작 시날 '곤지암 정신병원' 마스터링, 3. 네크로니카 샘플 시나리오 '시체공장' 마스터링, 4.피아스코 '난장무협' 플레이셋 플레이 및 7 Wonders 보드게임 다회 플레이를 경험했습니다.


 1~2. 인세인세인
 인세인 마스터링은 두 번째인데, 굉장히 오랫동안 호러 시날에 대해 준비하고 다른 시나리오 집들을 읽고 막 크툴루 룰로 시나리오를 쓰려던 찰라에 인세인을 접하여 신들린듯(..) 뽑아낸 초회 시나리오에 비해, 이번에는 치이는 일상 속에서 머리를 짜내고 짜내고 짜내다가 망하고 결국 전날 뽑아낸(???) 시나리오였던지라 아쉬운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질적인 마무리 마감 미흡 문제

 게다가 마스터링 전에 플레이로 접한 디오다디장의 괴기담의에 실린 공식 시나리오의 게임적 완성도가 너무 뛰어나서 위의 준비과정에서 겪은 생고생과 오버랩되다보니 왠지 이런 결론을 얻게 되었네요.
 
> 인세인은 그냥 디오다디장의 괴기담의에 있는 시나리오를 마스터/플레이어 ing 하는게 낫겠다. (........)
 
 그 밖에도 호러 게임 인세인 최강! 이라는 인식에서 조금 깨어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사명/비밀 기반의 사이코로 픽션 룰은 확실히 장르/게임적으로 엄청나게 활용도가 높고 재미있지만, '광기'가 정말 유저의 '공포'를 트리거링 할 수 있는가? 및 기본 공격의 대미지가 피아 모두 1d6 기반(이 게임의 캐릭터의 HP는 기본 '6'입니다)인 점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호러장르 TRPG에서의 전투 처리 및 '캐릭터'의 온전함sanity과 플레이어의 온전함sanity을 게임적으로 싱크시킨다는게 굉장히 어려운 주제고, 이 게임은 그것에 대해 나름의 좋은 해답을 주곤 있지만 그렇기에 의도치 않은 효과가 나올 수 있달까요.

 뭐 실은 결국 아 인세인은 게임 자체가 졸라 쩔어 끝내줘 그러니 난 핸드아웃을 통한 스토리 기믹이랑 플로우만 잘 정리하면 나머진 광기와 전투룰께서 알아서 해주실거야 (..)라고 대충 넘어간 부분이 독이 되어 아쉽게 느껴진거지만서도(..)



 3. 영구한 후일담의 네크로니카
 으아아ㅏ라아아아라아아

 -는 사실 농이 많이 섞인거고, 애초에 마스터링 타이밍 때 컨디션 문제 및 역시나 준비의 마감 미흡 문제가 아팠던 세션이었습니다.

 게임 배경 자체가 맛이 간 것은 애초에 WIKI를 번역하면서 잘 알고 있었고, 샘플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그런 설정들이 얼마나 '호러 장르'로서 건조하면서 날카롭게 사람의 심상을 후벼대는가에 감탄했었으니.

 다만 이 게임은 어드벤쳐 파트/배틀 파트로 정확하게 세션을 나누고 있고, 앞의 파트에서는 플레이어들의 혼신의 힘이 담긴 'Doll' 연기와 네크로맨서의 새디스틱한 중2병 환자 기믹이 어우러져야하다보니... 소화하기가 난감했습니다.

 ORPG 얘기를 꺼낸 것도 그런게, 괴롭혀야하는 향년(?!) 8~17세의 소녀의 인형과 그 인형을 만든 네크로맨서가 롤에 감정이입을 깊게 할 때 이 미친 세계의 진정한 새디스틱함이 두드러지는 건데 제가 또 trpg에서 메소드 연기파 게이머는 아니다보니. (orpg에서는 잘합니다)
 
 반면 배틀파트는 '턴'과 '행동'의 개념이 매우 독특한데 또 특유의 매우 간단한 룰(1d10을 굴려서 6이상이면 성공) 및 캐릭터 메이킹의 기본 특성(부위별로 '부품'을 끼워맞춰 생성되고 그 부품들의 고유 속성만으로 특성/스킬이 모두 정리)과 맞물려 좋았습니다.
 (전투를 해보기 전: "그런데 이 기본 파츠로 가지고 있는 '내장'x2 는 아무런 특수 능력도 없는데 왜 몸통에 표시되어 있는거지?"
  전투를 해 본 후: "아........................................................." )

 대전제의 룰 두 가지(1.모든 판정은 그냥 1d10을 던지고 6이상이면 성공. 2.모든 스킬의 코스트는 스킬을 쓸 때 미리 자신의 행동력(DnD라면 1d20+우선권으로 굴린 그 수치)에서 즉시 지불하고 그렇게 변화한 우선권 수치로 캐릭터 순서가 내려간다)에서 특별한 베리에이션 없이 모든게 설명되는데 그게 다른 TRPG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테이스트인 동시에 특유의 풍미가 있는 전투였네요.
 데미지의 처리가 부위 파괴로 바로 이루어지는 걸 이렇게 효율적으로 처리하면서 게임의 장르인 '고어'를 살리는 것은 정말 대단. 헌터즈문도 그 쪽은 나쁘지 않지만, 개인적으론 네크로니카의 손을 더 들어주고 싶습니다. 쉬운데 더 잘 살리고 전투 로직도 재밌습니다.

 어쨋건 기본 룰북에 6개의 시나리오가 실려있고, 전부다 빌어먹게 미친 내용들이며 특히 4연 시나리오가 하나의 캠페인이 되는 '어머니의 사랑을'은 진지하게 네크로니카 캠페인을 한 번 해볼까-라고 고민하게 할 정도로 '제대로 미쳐'있었네요.


 4. 피아스코
 드디어 플레이해봤습니다.
 던젼월드 아포칼립스월드 페이트 초인동맹 모두 구입했지만 장르에 대한 기호 문제로 한 번도 플레이하지 않았기에 피아스코(도 샀죠)는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숙원을 하나 풀었습니다.

 음... 이런 류 게임은 실은 원포인트 장르 저격을 하면서 적당히 디엔디 테이스트가 실려있는 FEAR사 제품을 선호하고 있기에, 디엔디 테이스트가 아예 삭제된 게임은 취향에 잘 맞지 않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생각한 것보다 괜찮았네요.
 상당히 미묘한데, 이런 류 게임(개인적으로는 once upon a time 이라고도 부릅니다)이 확실히 재미가 없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저야말로 즉흥시인류 게임 성향을 선호하다보니 흥 돋아서 이야기를 막 만들고 노는데 마스터 세션 준비도 없고 부담 없이 할 수 있으니 정말 좋죠.

 그러나 반대로 역시나 어렵다는 것은 이거 플레이 세트에서 이거 좋다, 하고 싶다 싶은게 별로 없습니다.
 개중 '내'가 재밌겠다 흥 돋는다 싶은 거는 또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난색을 표하면서 거부합니다. 결국 서로가 서로의 취향을 적당히 접고 절충점을 찾아서 세트를 고릅니다. 게임 내에서의 진행도 같은 문제 일색이지만, 이거야말로 룰이 존재하고 플레이세트가 존재하는 이유이니 논외.

 플레이 세트가 빠르게 추가되고 있는 것은 매우 좋은 팩트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만큼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하다는 반증도 되겠죠.


 뭐 암튼 제가 trpg를 RP랑 G라고 구별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이 맥락인데, 이를테면 디엔디는 게임입니다.
 그건 DMG에 실린대로 던젼(실내건 실외건) 방을 디자인하고 몬스터와 보물을 배치한 후 세션 속에서 데이터와 주사위 난수를 통한 전투 로직을 즐기고 주어지는 보상을 통해 캐릭터 시트의 데이터를 보정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재밌기 때문에, 그 앞단의 텔링과 관련된 '다소의 절충'은 사실 내가 'trpg를 하기 위해 고려하고 희생해야하는 자원'과 '그렇게 시간과 돈과 장소와 스트레스를 감안하고 얻는 재미'의 비교에서 크게 마이너스 팩터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근데 그런 '게임'이 극소화되거나 아예 배제된 장르의 trpg에서는 그런 앞단의 스토리 텔링에 대해 '취향적 절충'을 하는 순간 잃어버리는 재미 팩터 값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류 게임의 룰북에서 가장 중요하고 자세하게 규격화, 규칙화해야하는 게 바로 그런 취향적 절충을 모두가 최대한 손해를 보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면서 가이드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식은, 포도원처럼 아예 고유의 재밌는 다이스 게임 시스템이 갈등해소 도구로 들어가 있거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몬교도 테마는 더럽게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합니다만(..)), FEAR사 씬제 게임처럼 'DnD 게임'이 기본적으로 게임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거나, 아포칼립스 월드, 던젼월드, 혹은 더 나아가면 JTRPG의 특정 장르 게임들처럼 아예 포인트 저격 장르로 이 게임으론 이걸 하니까 이걸 할 사람만 모여봐, 그럼 쩌는 재미를 줄께여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돌고 돌면 결국 원점에서 팀 짤 때 자신(의 취향)을 잘 소개하기, 캠페인(세션/시나리오) 소개 잘하기와 같은 TRPG를 재밌게 하기 원론: 합의 챕터로 돌아오게 됩니다만..


 에이, 뭐 제가 뭘 알겠습니까(...) 아무튼 오랜만에 블로그에서 또 뻘글을 써보았습니다. 역시 좋아하는 취미에 대해서 생각하고 글을 쓰는 건 그 취미를 직접 하는 것 만큼이나 재밌네요. 막 쓰다가 시계를 보고 뭐하는 건가 싶어 급하게 마무리하고 갑니다. (...)



덧글

  • 역설 2015/07/01 01:53 # 답글

    우왕 블로그 후기군요.
    9인의 게이… 아니 사무라… 아니 게이머…

    고생하신 거에 비해 테이블 플레이 하신 건 별로 많지 않은 거 같네요. 좀 송구스런 ㅠㅠ;
    전 원세인세인을 할 때 정반대로 광기가 있으니 나머지는 으뜸 원님께서 핸드아웃으로 하드캐리해주실 거야! 라는 믿음으로 돌진했습죠. 클라이막스에서 주사위가 미쳐 날뛰는 바람에 극악한 난이도의 전투를 빠져나왔는데, 오히려 그게 마지막 기믹을 더 돋보이게 한 거 같고 그렇습니다. 결론은 역시 원세인!

    피아스코는 형이나 고형(?)이나 과연 재밌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살짝 했는데 즐겨주신 듯하여 기분 좋게 캠프 마지막 날을 끊었다 싶었네요. 플레이 세트가 계속 늘어나는 건 말씀하신 대로 좋은 일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상호 취향을 맞추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요. 쓰신 중간에 텔링을 위한 절충 대목에서 저희 사례 하나가 떠올랐는데, 랜덤으로 초기 관계/욕망/등등을 설정할 때 '주사위 눈이 뭔가 없어서 아쉬운' 적이 있었잖아요? 그때 "우리끼리 텔링 게임 하는 건데 주사위 몇 개는 임의로 바꾸죠?"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들어가버렸는데, 아마 그게 '취향을 위한 절충'과 'G를 위한 절충'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정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바꿨어도 재밌었겠지만.
  • 샤이엔 2015/07/01 10:36 #

    제약이 없는건 무한한 제약이 있는 것과 같으니 아쉬워도 룰대로 간게 정답이었을 것 같아. 지금 내 취향을 위해 주사위를 무시하면 바로 다음에 내 취향에 안맞는 타인의 공격을 주사위로 디펜스 할 수 없으니..
    인세인 칭찬 감사감사. 앞으로는 디오다디쪽 시날을 부담없이 자주 해보면 좋을듯. (환룡을 본다)
  • 마계범군 2015/07/02 14:10 # 삭제 답글

    네크로니카의 내장 이야기에서 뿜으면서 공감했습니다.(...)
  • 샤이엔 2015/07/05 13:24 #

    생명력 감소가 자연스럽게 부위파괴(?)의 효과 및 묘사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 ㅇㅇ 2015/07/06 15:48 # 삭제 답글

    그러므로 우리는 포도밭의 개가 아니라
    포도밭의 제다이를 해야 합니다!
  • 샤이엔 2015/07/15 21:21 #

    그런데 또 그 룰로 제다이를 하려면 어렵지 싶네요. 몰몬교->기독교 변환도 사실 아주 쉽진 않을 정도였으니..;
  • 사야 2015/07/10 19:22 # 삭제 답글

    군인은 웁니다 엉엉

    내년에...내년에야 말로! ㅠㅠ
  • 샤이엔 2015/07/15 21:21 #

    일단 얼른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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