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잡담 [잡담:게임책]



0. 시노비가미에 이어 블러드 크루세이드도 6권까지 리플만 읽었습니다. 5권은 R&R에 실렸던 거라 일단은 스킵.

 시노비가미는 리플레이 자체가 쏘우(?), 식스센스식 반전을 깔고 기상천외하게 파헤쳐지는 스토리라, 도입부 넘어가면 비밀이 궁금해져서 흥미진진하게 결말까지 쭉 읽어나가게 되는데, 블러드 크루세이드나 헌터즈 문은 그냥 '도입-추적-전투1-추적-전투2-끝'의 레이드 게임이다보니 '게임(전투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읽는게 고역이네요. 특히 모험기획국의 책에서 보여지는 사이토씨를 제가 싫어하는 것도 있고.


1. 디엔디밖에 모를 때에도 이른바 레벨업과 HP 개념은 TRPG 게이머에게 '상상력'을 발휘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거한이 휘두르는 양손도끼에 정통으로 찍히면 1~20점 쯤 데미지를 입는다고 할 때, 스몰 사이즈의 하플링의 HP가 100 이면, 이 조그마한 친구는 자기보다 훨씬 큰 거대 도끼에 풀 스윙으로 대 여섯번쯤 찍혀도 행동에 전혀 페널티가 없단 말이죠. 

 하이텔때부터 이야기가 나오던 TRPG(디엔디)로 인질극 구현하기로 생각을 바꿔보면, 결국 어떤 규칙과 상식을 가지고 와서 페널티를 설명하고 시스템적인 구조를 완성하더라도, 결론은 20면체 주사위를 던지고 잘 나오면 인질을 구하고 못 나오면 인질을 구하지 못한다입니다. 
 인질을 구하기 위해 활시위(방아쇠)를 당기는 캐릭터의 플레이어의 입장에선 결국 그 정도인 거죠. 


2. '이른바' 일본 스타일에서는 논리를 규칙과 수치화하는 것에 대해 냉소적입니다.
 스나이핑을 하는데 풍향, 풍속, 습도, 사수의 바이오 리듬 등을 고려해서 +/- 수치를 계산한다고해도 결국 TRPG에서 결과는 주사위를 던지고 잘 나오면 성공, 안 나오면 실패일 뿐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결국 d100 판정 시스템에서 '논리'로 계산한 복잡한 계산식을 룰로 정리하고 그걸 하나하나 다 계산한 후에 d100을 던지나, 2d6 판정 시스템에서 '상식'으로 대충 +/- 1~4 찍어서 던지나 뭐가 다르냐는 건데..


3. 이런 생각이 극대화된 게임이 사이코로 픽션, Roll&Role 게임입니다. WOD는 제가 간만 보고 안해봐서 단언하긴 어렵지만, 시스템을 보면 그 쪽도 이런 스타일의 게임이겠죠. 어찌보면, 요즘은 DnD,겁스 같은 게임보다 이런 게임이 더 대세인거 같기도 합니다.


4. DnD로만 설명하면 결국 이런 것 같습니다. 
 3rd이전 DnD는 클래식하고 빈공간이 많은 룰이었습니다. 단순히 ADnD나 옜날 DnD의 마법 주문 설명만 몇 개 읽어도 3rd 이후의 DnD에 익숙한 사람들은 멘탈이 붕괴될거에요.
 아무튼 이런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은 오히려 '던젼월드'와 유사합니다. 텍스트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플레이어들은 취향에 따라 PC를 표현하는 레벨은 다르더라도 어쨋건 결국 자유롭게 행동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선언에 대한 해결은 오직 마스터의 '상식'과 20면체 주사위의 숫자로 적당히 처리됩니다. 


5. 단적인 예로 ADnD의 전투에서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캐릭터 시트에 적힌 데이터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내 턴에 무브 액션을 어떻게 소모하고, 스탠다드 액션으론 무슨 기술을 쓰는가는 3rd 이후 DnD 게임이고, 클래식한 게임에서 게이머는 그냥 달려가서 패거나 전장 환경을 붙잡거나 둘 중 하나죠. 
 달려가서 패요! or 지금 겨울이죠? 네. 여기 산이었죠? 네. 눈 쌓여있죠? 네. 그럼 전, Fus Ro Da! 
 그러면 마스터는 상식으로 판단하여 20면체 확률을 굴리거나 혹은 상식이 있다는 연기를 한 후에 20면체를 한 번 굴리는 척을 한 후 상황을 해결하는 식입니다.


6. 가장 이런 게임과 거리가 먼 규칙을 가진 4판 디엔디의 DMG의 초입부분의 사이드바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제작자가 어린 아들과 이 게임을 하는데, 아들이 자기 맘대로 주사위를 굴리더니 숨겨진 보물상자를 찾았다고 선언했고, 오랫동안 이 게임을 해 온 사람으로서 이게 이런식으로 게임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라는 겁니다.


7. 주사위를 던지고, 그에 맞춰 롤플레잉하는 방식에서 타임 스케일링은 완전히 임의로 정해집니다. 
 라운드에 플레이어 캐릭터가 가진 자원인 액션을 어떻게 소모하는지 정하고 그 결과의 변수로 주사위가 사용되는 것에서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는 라운드와 턴 개념은 필수입니다만, 내가 지금 주사위를 굴렸는데 '잘' 나왔으니 난 이 전투는 이겼어. 자, 모두 같이 이 결과를 롤플레잉해보자. 는 상황에서 라운드와 턴, 액션 개념은 무의미하죠.


8. 악당이 인질소녀의 머리에 보우건(or권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디엔디 3rd는 풀 커버와 쿠드그라, 디플로머시와 블러프, 인티미데잇 스킬의 규칙, 혹은 프리스티지 클래스나 피트의 디스암 규칙 같은 것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른바 일본식이라면, 이 상황이 클라이막스인지 도입인지 둘 다 아닌지에 따라 완전히 상이하게 처리하여, 도입이라면 주사위 없이, 도입도 클라이막스가 아니라면 2d6 한 번 던져서 잘 나오면 잘, 못 나오면 잘못 된 결과로 처리할 것이고, 클라이막스라면 그 시스템에서 오직 이 상황만을 처리하게 만든 특이한 규칙으로 일종의 다이스 게임을 할 것입니다.


9. DnD 4에서, 맵툴 깔려 있는 상황, 전투 중에 4판 룰을 그대로 따르면서, 플레이어인데 이른바 일본식으로 상황을 주도해본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확실히 모든 상황이 아니오 할 때, '룰'을 따르면서 예 하는 반전을 만들어내는 쪽이 과정의 재미와 결과의 카타르시스 모두 압도적으로 재밌었습니다만... 12년 DnD만 해서 한 번 맛 볼 재미의 빈도라면 글쎄요. 


10. 아스 마기카에서 처음 보고 이거다 싶었던 것은,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NPC를 만들거나 혹은 붙잡고 끼어들어 대사와 선언을 하는 게임이었고 확실히 이건 이른바 일본식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일단, 이 편이 훨씬 재밌습니다.
  포도밭의 개들이나 던젼월드나, 공을 플레이어에게 돌리는 것만으로 즉석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데 오히려 룰은 간단해지고 재미는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확실한 것은 공 몰고 싶은데 공 안주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공 몰기 싫은데 억지로 공 넘겨 주는 것도 재미없다는 겁니다.


11. 아마 그래서 저는 이른바 일본식으로 지금 내 RP력(or드립력)이 끓어오르면 참지 않고 마스터의 영역을 마음대로 끼어들어 NPC를 조작(&조종)하고 또 바로 빠지는 플레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계속 마스터가 공을 넘겨주기만 하는 쪽은 멍석 깔리면 더 춤추기 싫은 것도 있고 왠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꺼려지고요.
  결국 제가 좋아하는 게임에서 마스터는 책임감을 가지고 항상 고통받는 존재여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다 짜오지만, 플레이어가 마음대로 치고 빠지면서 망쳐놔도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그러길 바라는 사람.. 
  그게 제가 마스터링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보통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같이 하하호호하게 유도하는 식이겠습니다만..


12. 플레이어링 할 때는 철저하게 마스터나 다른 플레이어를 보조하기 위해서만 치고 빠지다보니 답답합니다. 하고싶은데로 막나가고 싶은데 그게 안된달까. 사실 그래서 이럴바에 마스터링 하고 말지랄까, 애초부터 TRPG는 마스터링을 더 선호합니다. 
  플레이어로서는 DnD4를 사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13. 이 잡담은 대체 언제까지 이어지는 걸까요. 
  결론은 그렇네요. '공', 이른바 서술권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가장 선호하고 재밌게 느껴지는 방식은 트룹 스타일이고, 마스터가 독점하는 거나 플레이어에게 강요하는 거나 똑같이 싫다.
 AD&D는 DnD 시스템인데 유저층과 시스템의 특성으로 인해 실제로는 Roll&Role 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이 사람은 TRPG가 무척 하고 싶다. (?)






덧글

  • 란필 2013/05/29 20:58 # 삭제 답글

    마지막줄이 결론이군(..)
  • 샤이엔 2013/05/30 11:02 #

    사실 TR할 때는 바빠서 관련 잡담 쓸 짬도 없지(..)
  • SY 2013/05/30 13:32 # 삭제 답글

    불쌍한 쿠오리님(...)
  • 샤이엔 2013/05/30 20:13 #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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