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리플레이들.. [잡담:게임책]



 시노비가미의 충격 이후로 꾸준히 리플레이들을 읽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천하요란의 리플레이를 두 권 읽었는데..

 천사소녀 네티를 패러디한 학원 괴도물도 나름 재밌었지만, 이 번에 읽은 천하요란 '혼노지의 변'편은 재미도 있었지만 근자에 잊고 있었던 초심을 떠올르게 하는 바가 있어 더 좋았었네요.


 처음 TRPG를 마스터링 할 때부터, '희노애락'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곤 했었습니다.

 TRPG라는 게임은 실상 어지간하면 희희낙낙하면서 서로 농담이나 드립을 던지는 분위기로 흐르기가 쉬운 장르의 게임입니다.
 대부분의 세션에서 참가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잡담과 만담의 경계를 넘나들며 웃고 떠드는 게임을 하게 되고, 그렇게 분위기를 이끄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참가자들을 화나게 하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물론 여기서 화'라는 것은 메타게임적인 불합리함에서 오는 분노나 게임 바깥의 사람들간의 불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그건, 너무 쉽습니다) 그것이 게임적으로 의미가 있는, 플레이어가 PC나 NPC에 감정이입해서 느끼는 분노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슬픔 나아가 눈물까지로 가버리면... 이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TRPG의 세션을 하면서 감정이입으로 인해 느낀 슬픔이 도를 넘어 플레이어가 눈물을 흘린다라고 하는 것은 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경지가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TRPG라는 게임의 마스터링을 하면서, 항상 목표, 지향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플레이어들을 울리는 마스터링이었습니다.
 다른 만화나 책, 영화를 보면서도 작품의 감상 외에 생각해보곤 했던 것도 콧잔등을 짠하게 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떨구게 하는 작품들이 왜 그랬던가에 대한 고찰이었죠.


 각설, 사람은 크게 웃고 난 후에 더 울기 쉬워진다라거나 한국사람의 눈물의 클리세로서 신파극의 대단함 정도가 취미로 trpg를 하는 게이머인 제가 어렴풋하게 체감하던 눈물의 키워드였는데 이것도 어느새부턴가 완전히 까먹고 있었더랬죠...

 그러다 갑자기 실례로 플레이어를 울려 버리는 리플레이를 읽으니, 아..싶기도 하고 헐...싶기도 하고 뭐랄까 복잡미묘한 심경이네요.
 
 이 리플레이에서 플레이어를 울려버리고 계속 그 감정선을 유지하게 한 동인은 다음과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1.마스터 포함 전원 참가자는 여성. 이것은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pc와 가족을 잃고 험하게 살아온 30대초반 PC가 의붓모녀 관계로 롤플레잉을 하는 것 같이 실제 tr에서 한 사람이 남자 플레이어라는 것만으로 바로 유머나 개그스럽게 변해버리는 등과 같은 요인을 최대한 제거해버린다는 것과 같이 '진지함'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됨.

2.오다 노부나가빠인 사람에게 오다노부나가가 메인이자 BOSS로 나오는 기획 시나리오 세션의 마스터링을 맡기고, 그 사람이 직접 플레이어들을 캐스팅. 그 결과 마스터의 팬심이 담긴 혼이 담긴 npc연기와 연출, 스토리 전개는 기본에 참가자 모두가 게임 배경에 대해 사전지식(혹은 팬심)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

3.그래서 캐스팅 된 사람 중에 '아저씨' 속성을 가진 사람에게 쿨 댄디 지략가 타입의 실제 매우 유명한 전국무장의 캐릭터를 pc로 하게 시킴. 곧, 아케치 미츠히데를 '아저씨'속성 가진 사람한테 시키고, 오다 노부나가빠인 마스터가 직접 혼을 실어 오다 노부나가를 연출하니, 1+2에 이어 사실상 여기서 이미 게임은 끝났다.

 결론적으로 아케치 미츠히데의 플레이어는 시작부터 내내 감정선을 자극받으며 울컥울컥하다가,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의 변모를 눈치채고 의심하여 노부나가와 대면하는 씬에서 부외자이자 관객인 제가 보기에도 욕이 나오게 멋진 '노부나가'를 연출하면서 미츠히데의 의혹을 불식시키고, 아직 피지 않은 벚꽃 나무 아래서 먼 곳에 떨어져있던 아내와 딸을 만나게 하면서 내년에 다시 한 번 다같이 꽃구경을- 이라고 말하자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각주를 보니, 이 플레이어는 다른 게임에서 똑같이 미츠히데를 플레이하면서 그 때 아내와 딸에게 돌아오면 꽃놀이를 같이 하자고 말하고 돌아오지 못한 적이 있다는군요. (..)

 
 결론적으론 그렇습니다. 

 언제나 모든, 재밌는 trpg의 일순위가 결국엔 게임보다도 '멤버'로 귀결되듯이..
 오다 노부나가의 빠에게 혼노지 시나리오를 기획/마스터링하게 시키고, 미츠히데 모에! 노부나가 모에! 하는 사람에게 혼노지의 미츠히데를 시키며, 신선조 빠에게 신선조를 시키는데 전원이 '일본'의 trpg게이머이고 또 거기에 더해 여성진이 게임을 하니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라고.

 좀 더 개인적인 코멘트를 달아보자면, 1.책으로 만들어서 팔기 위한 세션, 2.개인적인 공간에 모여 녹음을 하는 세션-이라는 것도 게임 외적으로 이런 것이 가능하게 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볼 때도 처음부터 오랜만에 좀 울어볼까라고 작심하고 보는 거랑, 가족이나 친구들이랑 같이 영화보러 가서 '쪽팔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보는 거랑 눈물 나오는게 확 다르거든요. 책으로 팔기 위해 가공,가필이 가해지는 것과는 또 다른 별개의 문제로 이런 부분이 있죠.
 
 아무튼 뭐,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초심이 생각나서 끄적여봤네요.


덧글

  • SY 2013/09/08 09:38 # 삭제 답글

    뭔가 생각하는 바를 주는 글이였네요. 잘 읽었습니다.
  • 샤이엔 2013/09/08 10:54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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